* 하이앤로우 더 워스트 까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코브라 x 무라야마 토시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히노 주유소는 한가해진다. 그러면, 한참 일할 시간을 넘긴 코브라는 기둥에 기대앉아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그렇게 일과를 대충 마무리할 무렵에서 소드 지구의 노을은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꽤 보기 좋은 경치가 완성된다. 지포 라이터를 켜고 담배에 불을 붙힌 코브라가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뿜어내면 희뿌연 연기가 붉은 노을을 배경 삼아 하늘하늘 흔들린다.
담배를 반쯤 태웠을 즘, 부르릉- 바이크의 배기음이 가까워졌다. 보통 때의 코브라라면 벌떡 일어나 담배를 지져 끄고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미동이 없다. 그렇게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여어~ 코브라쨩.”
익숙한 목소리가 바이크에 걸터앉은 채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든다. 그렇지, 이 녀석이 오지 않을 리가 없지. 어느새 코브라의 일상 한구석을 차지한 무라야마 토시키가 활짝 웃고 있다. 상대의 반응이 없자 무라야마는 상체를 기울여 코브라와 시선을 맞추려고 애를 쓰며 기웃거린다. 코브라쨩, 코브라쨔앙- 나 왔어. 기름 넣어줘. 좀 보채고 나면 그제야 코브라의 시선이 데굴 굴러 저를 향한다. 눈이 마주치자 무라야마는 다시 활짝 웃는다. 그 웃음이 참 애교가 섞여 있는 것 같다고, 무심코 생각한 코브라는 담배 연기를 마저 뱉어내 그 연기를 손으로 훔치며 함께 방금 떠오른 생각을 지운다.
“…만땅이잖아.”
“어, 그런가아.”
늘 이런 식이다. 무라야마는 정말 줄기차게도 히노 주유소를 방문했다. 어디선가 바이크를 산 뒤로는 거의 빠지지 않고 매일매일 얼굴을 들이미니, 코브라도 이쯤 되면 녀석의 끈기는 인정해야 한다고 내심 생각했을 정도다. 하긴, 괜히 오야고교의 정상을 먹은 남자겠나. 다만 코브라에게 있어서 문제는.
“그래서 코브라쨩. 끝나면 뭐해? 저녁 시간 비어?”
“……글쎄.”
몇주 전, 눈앞의 이 녀석에게 고백을 받았었다는 것이다.
*
어느 날이었다. 쿠류 그룹과의 접전이 일단락되고, 소드 지구엔 나름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나날이 되돌아왔다. 변한 것이 있다면 적어도 소드 연합 간의 사이에서 주먹을 맞부딪히는 일은 줄어들었다는 정도일까. 주유소에서 일을 하고 나면 온몸을 기름에 담근 것 마냥 기름때가 묻은 냄새가 났다. 코브라는 작업복에서 평소 입던 스타일의 사복으로 갈아입고 홀로 이자카야를 향했다. 가볍게 한잔 걸치고 돌아갈 생각이었던 것이 뜻밖에도 그곳에서 무라야마를 만났다. 무라야마도 마침 혼자였고, 자신도 혼자. 다른 녀석이었다면 그냥 지나갔겠지만, 모르는 척 지나치기엔 무라야마에게 받은 도움이 없잖아 있었고. 거기다 상대가 주인 만난 대형견처럼(정말 그랬다.) 얼굴이 파아아- 하고 펴지는 것이 차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일상부터 시작해서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이야기, 코브라의 취미인 레슬링에 대한 이야기를 거쳐 흘러가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많이 지나있었다. 주변에 다른 손님들도 모두 나간 상태라 남은 것은 저와 무라야마뿐. 거의 엎어지다시피 한 자세로 레몬 사와 잔을 들고 있던 무라야마는 졸음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문득 그렇게 얘기했더란다.
“그런데 있잖아, 코브라쨩…”
“뭐가.”
들고 있던 잔이 툭 하고 테이블 위로 내려앉는다.
“코브라쨩은 나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고말고…”
“나는 코브라쨩, 좋아하거든.”
뚝 떨어진 목소리가 술잔을 기울이던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그러니까, 내가 방금 들은 말이. 어떻게 생각해? 다음에 돌아온 말이 좋아한다는 말이었다. 보통 이 흐름이라면…… 무라야마는 고개를 숙인 채 미동이 없다. 코브라는 방금 제가 들은 말이 무엇인지, 술기운 탓에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그 사이 고개를 든 무라야마는 발개진 얼굴로 눈을 마주친 채 다시 한번 말했다.
“그냥 좋아, 가 아니야. 어엄-청 좋아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LOVE!”
Like가 아니라 Love. 혹시나 했던 마음에 무라야마는 확인 사살로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선 테이블에 머리를 쾅 박고 잠에 빠져든 것이다. 방금 이게 술주정이라면 정말로 고약한 술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은 무라야마의 폭탄 발언으로 찬물을 맞은 듯이 지금껏 들이부은 양이 아까울 정도로 술이 확 깨버렸는데. 코브라는 테이블에 얼굴을 박고 잠에 빠져든 정수리를 보며 황망히 생각했다. 나더러 어떡하라고……
그날 코브라는 으레 취한 사람이 그렇듯이 물을 잔뜩 빨아들인 솜처럼 무거운 무라야마를 이끌고, 택시를 불러 제 자취방으로 향했다. 택시를 태워 보내자니 녀석의 집 주소를 몰랐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렇다고 술 취한 사람을 길바닥에 내던지고 갈 만큼 아예 모진 사람도 아니기도 했고.
다음 날 일어났을 때 바닥에 대충 깐 이불 위에 눕혀두었던 무라야마는 없었다. 대신 엉성하게 개어놓은 이불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을 뿐이다.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확인하면, 메일이 두 통 와있었다. 한 통의 발신인은 무라야마 토시키.
[미안. 어제 나 끌고 다니느라 고생했지. 길바닥에 안 버려줘서 고마워.]
그리고 남은 한 통의 발신인도 무라야마 토시키.
[그리고 어제 한 말, 술김에 한 말 아니니까.]
“…….”
코브라는 숙취가 몰려오는 기분을 느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에도 무라야마는 뻔뻔하다면 뻔뻔스럽게 코브라의 앞에 나타났다. 바이크를 사기 전에는 지나가다 들렀다는 식으로 달달한 간식거리를 손에 들고서 찾아오기도 했다. 단 음식을 좋아하는 제 입맛은 또 어디서 들은 걸까. 코브라는 어색하게 무라야마가 내민 봉투를 받아들면서 그런 자신이 바보 같다고 여겼다. 고백을 받은 상황 자체는 영 글러 먹었지만, 어쨌든 고백을 받긴 받았다. 그 상태에서 자신은 아직 아무런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일주일이 되고, 그 일주일이 이제는 한 달을 채워갈 기세다. 무라야마는 그 후로 코브라쨩은? 어때? 하는 식으로 물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여어~ 코브라쨩! 하고 인사를 대신하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가버린다. 그래, 평소처럼.
말하자면 코브라는 무라야마의 고백에 대한 대답을 계속해서 유보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대답을 미루고 있는 자신에게 의문을 느낀다. 왜,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무라야마가 싫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치고받고 싸운 정도 정이라고, 지금이라면 좋은 친구가 되려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 고백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무라야마를 좋아하는가? 거기에 고개를 끄덕여보자니 또 이상했다. 이 감각은 Like일까, Love일까.
무라야마에게 고백을 받은 지 셋째 주를 거의 채워갈 무렵이었다. 아버지의 명령으로 주유소의 뒷정리를 맡은 코브라가 늦은 시간까지 일할 때. 전화벨 소리가 울려 액정을 확인도 하지 않고 받으면, 무라야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는 귀에 박힐 정도인 그놈의 여어, 코브라쨩.
“뭐야, 지금 바빠.”
[아, 지금 바쁘다고. 미안…]
그게 또 비 맞은 강아지처럼 추욱 쳐지는 목소리라, 코브라는 그만 “그래서 무슨 일인데.” 하고 덧붙이고 말았다.
[그게 말이야, 코브라쨩… 얘기 좀 들어주라.]
방금 바쁘다고 말한 건 금방 잊어버린 모양이다. 하지만 코브라는 무라야마의 전화를 쉽게 끊을 수 없었다. 그 뒤로 들려온 무라야마의 이야기는 길고도 길었다. 오야고의 내부에서 레드럼이 다시 돌고 있는 것 같다는 둥. 쿠류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이야기였으니 심각하다면 심각한 이야기였지만, 무라야마는 진지하게 듣기 시작한 코브라에게 ‘아, 그치만 벌써 누가 퍼트렸는지는 잡아놨으니까 안심해.’ 하고 밝게도 말했다.
[그것보다는 말야. 토도로키 녀석이 걱정이야.]
무라야마는 코브라가 보기에도 붙임성이 좋은 성격이다. 늘 붙어 다니는 세키나 후루야 외에도 곁다리로 종종 토도로키라는 이름을 꺼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은 토도로키의 이야기인가. 잠자코 듣고 있으면 무라야마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너무 겉돈단 말이지. 다행히 붙어있는 녀석들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 녀석은 나에게 너무 얽매여 있는 게 문제야.]
염려가 가득 깃든 목소리. 그리고 무언가 말하기를 머뭇거리는 정적.
[……그래서 말인데. 슬슬, 오야고를 졸업하려고 해.]
어딘가 쓰게 느껴지는 한 마디에 코브라는 움직임을 멈췄다. 오야고교를 졸업한다고. 네가?
코브라는 안다. 무라야마가 주변인의 이야기를 하며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무라야마는 무법지대 같았던 오야고교를 하나로 만든 남자다. 무라야마가 지금의 오야고에 얼마나 애착을 가졌는지, 그리고 아끼는지는 코브라도 안다.
“…그, 토도로키라는 녀석 때문에?”
[음~… 그 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던 일인데. 뭐… 좋은 계기가 되어줬다고 생각해.]
부정하지 않는다. 그 사실이 코브라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했다. 그렇게 아끼던 너의 장소였는데. 한 녀석을 위해 떠날 수 있겠어? 정말로? 그렇게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되물었다간 간신히 마음을 잡은 무라야마는 흔들리리라.
“……그래.”
간신히 그 대답을 끝으로 코브라는 무턱대고 전화를 뚝 끊었다. 5초 뒤 다시 전화가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지금 받았다간 공연히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러니 받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여기서 피어난 모순을. 나는 왜 화가 났을까.
일방적으로 무라야마의 전화를 끊은 이후로 무라야마의 메일이 몇 통 왔었다. ‘코브라쨩? 무슨 일 있어?’ 라거나, ‘나 뭔가 잘못했어?’ 라거나. 따지자면 무라야마의 잘못은 없다. 그저 일방적으로 자신이 화가 났던 것이고,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 그 이유를 없어 답답할 뿐이다. 코브라는 한동안 무라야마를 피해 주유소에도 나가질 않았다. 이 화를, 마음을 가득 채운 울렁거림의 정체를 알기 전까지는 무라야마를 만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코브라는 자취방의 베란다 난간에 기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자, 하나하나 되짚어 보자. 나는 왜 화가 났는가. 코브라는 오야고교를 떠나는 무라야마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무라야마가 오야고교를 떠난다는 것은, 곧 소드 지구를 떠난다는 의미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 사실이 못내 싫었다. 그리고 그 원인이 토도로키 라는 녀석이 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네가 떠나야 해, 무라야마. 너는 나를 좋아한다고 했잖아. 만약 네가 여길 떠난다면.
“…….”
타들어 간 담배가 재가 되어 툭 떨어졌다. 생각이 멈췄다. 코브라는 변화가 두려웠다. 익숙한 것이 다른 무언가로 변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무라야마의 고백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껏 무라야마와 지내온 시간은. 익숙해진 바이크의 배기음도, 네가 사 온 디저트의 단내도 모두. 이미 일상이었다. 어느샌가 일상 속으로 푹 빠져있었다. 긴 시간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네게 푹 물들어 있었다.
코브라는 겉옷을 들고 뛰쳐나간다. 소드 지구의 노을이 지고 있었다. 지금 시간이면 무라야마가 히노 주유소를 들렀을 시각이다. 주유소로 뛰어가면 이미 사람의 그림자는 없다. 다시 돌아나간다. 바이크로 달렸다면 금방 찾았을 거리를 다리로 뛰고, 뛰고, 또 뛰어서. 마침내. 뒷모습을 잡았다.
“엇. 코브라쨩?”
무라야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제 팔을 낚아챈 코브라를 돌아본다. 코브라는 헉헉대며 숨을 고르기 바빴다.
“우와, 이 땀은 뭐야. 왜 이렇게 뛰어왔어. 무슨 일 있어?”
잠시 상체를 숙여 숨을 고른 코브라는 고개를 들어 무라야마를 본다. 적잖이 당황한 얼굴이 보였다. 이 얼굴을 며칠 동안 얼마나 그렸었는지 너는 모를 거다.
“……질투했어.”
“으응?”
“토도로키한테.”
네가 오야고교를 떠날 만큼, 그 변화를 쉽게 받아들일 만큼, 그렇게도 신경을 써주는 상대라 질투를 했다. 이게 진실이었다. 때로는 고양이 같은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좋아해. 무라야마.”
“코브라쨩, 그거…… Like라는 뜻이야?”
목소리가 떨렸다. 코브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Love야.”
그 말을 끝으로, 무라야마는 코브라의 품에 뛰어 들어왔다.
무라야마로부터 고백을 들은 지 넷째 주가 되는 날이었다.
*
오늘도 코브라는 주유소에 나와 있다. 며칠 일을 빠진 탓에 그 시간을 메꾸기 위해 늦게까지 남아있는 날이 잦았다. 노을이 진다. 하지만 코브라는 여느 때처럼 담배를 꺼내 물지 않았다. 익숙한 바이크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모습이 보이고. 한 손에 편의점 봉투를 들고 있는 무라야마가 싱글벙글 웃는다.
“코브라쨩~”
“뭐야, 오늘도 기름 만땅이잖아.”
“오늘치 LOVE는 만땅 아닌걸.”
귀여운 말을 하는 연인을 향해 잔잔한 미소를 띤 코브라는 가만히, 무라야마의 입술을 제 입술로 꾹 누른다. 오늘도 소드 지구의 노을은 보기 좋았다.
'HiGH&LOW'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토도무라]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0) | 2025.01.28 |
|---|---|
| [아라세이] 원인불명 (0) | 2025.01.28 |
| [아마미야 형제] 그 고양이의 하루 (0) | 2025.01.27 |